초를 돌려 장산범을 쫓아낸 할아버지
외할버지께서 방문 앞에 앉으셔서 땀을 뻘뻘 흘리시며 방문에 대고 초로 원을 빙빙 그리고 계셨다합니다. 달빛에 비치는 창호지 문 밖에는 사람이 다소곳이 앉아있는 형상이 보이더랍니다. 한참을 초를 돌리니 문밖에 그것이 일어서더랍니다. 삐걱삐걱.. 마루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방문바로 앞 마루를 왔다갔다 하더니 다시 방 문앞에 멈춰서더니 갑자기 엎드리더랍니다. 아래로 엉금엉금 기어 내려가는 느낌...
여기 저기 무언가를 질질 끌고 다니는 소리. 흙을 살살 파는 소리. 흙위를 사박 사박 밟고 다니는소리... 짐승 소리마냥 발소리가 여러개 였다 합니다. 그렇게 얼마간 마당을 돌아다녔을까요. 다시 방문앞 마루위로 올라설때는 사람이 걷는것 마냥 허리를 세우고 걸어와 아까전과 같은 모양으로 다소곳이 앉더랍니다. 근데 어머니의 느낌에는 그것이 뒤돌아 앉아있는 느낌이 아니라, 외할아버지와 마주보고 앉아있는 느낌. 외할아버진또 뒤질세라 초를 그것의 머리쪽에다 문에대고 빙빙 돌리시더랍니다. 한참을 돌리고 있으니 그것이 팔을 한짝 들고 손으로 창호지를 살살 긁더랍니다.
다음날...창호지문에는 손톱자국이 여러개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 저희 막내 외삼촌 꼬꼬마 시절 동무들중 한명이 마을에서 갑자기 사라졌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있을 때였다고 합니다.
시기는 봄이였고 막내외삼촌 저희 어머니 이렇게 두분하고 동네 젊은 청년들과 처자들이 모여 산을 올랐다고 합니다. 집을 나서기전 정상가까이 있는 큰바위 쪽까지 절대 가지 말라는 외할머니의 신신당부와 함께. (중략) 몇분이 지났을까요..스스로 정신을 차리셨는지 눈물콧물 빼시며 엉금엉금 내려오시더니..
"누부야 당장내리가자 당장 안카면 죽는데이"
둘은 그저 뒤도 안돌아 보고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냅다 달리셨답니다. 삼촌의 말인즉슨, 큰 바위 위로 얼굴을 쑥 올려 보니 동굴이 하나있었는데 그 앞에 동굴입구만한 큰바위로 입구를 막아놓았더랍니다. 그리고 입구만한 바위 위에는 어른이 입을법한 옛날 한복 윗도리 하나가 턱하니 올려져 있었는데, 한복은 피투성이었답니다. 그 주위에 작은 바위도 몇개가 있었는데 그 바위 위에도 피칠한 한복이 몇개 있었답니다.
"범이 한짓 아이겠나?" 라는 어르신들의 말씀과 함께 막내외삼촌은 저희 외할머니께 호되게 야단을 맞으셨답니다. 그리고 다큰 막내외삼촌께서 어린애 마냥 떨면서 이런말을 하셨답니다. "그 바위 위에 얼라들 옷도 몇벌 있었는데 우리 어렸을때 같이 놀던 애들중에 한명 사라졌다 캤는 아 있었잖아 혹시 그아도 우리 아까 갔던 거기서 사라졌는거 아이가?"